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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다울 “왜 아픔의 이야기는 알려지지 않을까요?”

    <월간 채널예스> 12월호 / 『천장의 무늬』

    구체적인 경험들이 늘 궁금해요. 살면서 한번도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잖아요. 가벼운 감기라도 그 과정에서 어떤 것을 겪었는지 세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2020.11.25)

    김윤주 사진박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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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대 위에서의 낭독회는 불가능한 것일까?” 뚜렷한 병명 없이 만성통증을 앓던 작가 이다울은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봐야 하는 생활이었지만, 끊임없이 상상하고 통증과 함께하는 삶을 기록했다. 알 수 없는 아픔과 지낸 시간을 자신이라도 기억하기 위해서, 그 시간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빨리 나아서 건강해져”라는 말은 아픔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납작하게 짓누르는 게 아닐까? 이다울은 말한다. 당신이 아팠을 때의 일을 자세히 듣고 싶다고. 질문하고 들으며, 그렇게 구체적인 몸들의 이야기는 서로 만난다. 

    이다울 작가는 일상의 비범한 모습에서 삶의 본질을 발견하는 시선을 지녔다. 첫 에세이 『천장의 무늬』는 이름 모를 병과 통증이 자신의 삶에 미친 변화 속에서, 자신의 바깥과 내면을 깊이 들여다본 과정을 써 내려가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작업물은 웹 사이트 (https://www.pul-lee.com)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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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이 납작해지지 않도록

    시작은 웹 사이트에 셀프 연재한 에세이 「등의 일기」였죠. 

    네,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이 시작되면서 침대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병원에서도 병명을 찾을 수 없으니까 억울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제 몸과 통증을 관찰해야겠다는 생각에 기록을 시작했어요. 저라도 쓰지 않으면, 아픔이 어디에도 말해질 수 없을 거라는 불안을 느꼈거든요.

    왜 ‘등의 일기’였나요?

    등을 대고 누운 시간에 대한 기록이어서요. 실제로 침대에 누워 글을 쓰기도 했고요. ‘등’은 아프고 난 후에 새롭게 인지하게 된 단어예요. 성동혁의 시 「6」에 ‘발가벗겨져도 창피하지 않은 방에서 나의 지루한 등을 상상한다’는 구절이 나와요. 그 시를 떠올리면서 지은 제목이에요.

    주로 언제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쓰셨어요?

    통증이 완화될 때마다 썼어요. 너무 아픈 시기에는 누워서 무작정 제 말을 녹음한 적도 있는데, 그건 앓는 소리에 가까웠어요. 일어나는 게 힘들면 누워서 영화나 책을 볼 수 있는 반사안경 ‘레이지 글래시스’를 착용하고 썼고요. 

    웹 사이트 연재 당시, 독자들의 편지를 받기도 했다고요.

    제 글을 읽고 이메일이나 SNS 메시지를 보내는 분들이 많았어요. 말하기 어려운 통증에 대해 본인들의 경험을 공유하기도 하고, 실질적인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요. 생각보다 말하기 어려운 병을 앓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예를 들면, 생리통을 심하게 앓는 사람도 많은데 엄살처럼 여겨질 때도 많잖아요. 그렇게 드러내기 힘든 경험들을 들을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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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픈 몸과 살아가는 시간

    ‘투병’이 아니라 병을 다스린다는 뜻의 ‘치병’이라는 단어를 쓰셨어요.

    물론 저도 질병과 싸우고 있기는 한 것 같아요. 그런데 병을 적으로 만들고 나와 분리하니, 질병이 있는 상태를 비정상으로 간주하게 되더라고요. 아픈 시간은 쓸모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모든 계획을 완치 이후로 유예하면서요. 건강해지면 내 인생이 다시 시작될 거야 하면서.(웃음) 그런데 ‘치병’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후, 아픈 상태를 받아들이고 살아나가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됐어요. 통증이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다스리고 관찰하는 것이 됐죠. 이 아이디어는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김신식 작가의 ‘치병일기’ 강의를 들으면서 얻은 거예요. 

    이름 없는 통증에서 오는 두려움을 외부에서는 잘 알 수 없잖아요. 어떤 두려움인지 들려줄 수 있나요?

    미래를 알 수 없는 불안이 제일 크죠. 진단명이 있다고 해서 완치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약간의 가이드는 있을 거예요. 약을 며칠 먹으면 나아서 일상으로 복귀하겠구나 상상이 되죠. 그런데 저는 병명을 모르니까 미래를 예측할 수 없었어요. 학교를 다시 나가야 하나, 휴학을 해야 하나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었죠. 그런 막연함 때문에 힘들었어요.

    “덜 아픈 삶을 택할 수 있다면 택하겠지만, 다른 몸을 살면서 새로운 기회가 열린 것 같다”(294쪽)고 썼어요. 

    원래 저는 훌라후프 대회에서 1등을 하고 ‘기물 파손’이 꿈일 정도로 건강한 몸을 갖고 있었어요. 학창시절에는 몸을 활발하게 쓰는 것의 중요성을 배우면서 자랐고요. 그런데 막상 몸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니까 새로운 상상을 하게 되더라고요. 자연히 아픈 몸들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게 됐고요. 돌봄 노동을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어요. 저는 아주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아프고 나서부터는 주변 사람들에게 무수한 돌봄을 받았어요.

    책으로 묶으면서 과거의 글을 다시 읽어보는 기분은 어땠어요?

    제 몸이 왜 아픈지 작은 힌트를 얻기도 했어요. 갑자기 찾아온 질병이 아닐 수도 있겠다 하고. 그렇지만 아직은 익숙한 모습들이라, 이게 나구나 다시 깨닫고는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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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세계를 유심히 응시하기

    누군가 아프다고 하면, “얼른 나아서 건강해져”라고 말하지만, 사람들은 구체적인 이야기를 궁금해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작가님은 “모두의 아픔이 보다 자세히 말해졌으면 좋겠다”(6쪽)고 썼어요. 

    구체적인 경험들이 늘 궁금해요. 살면서 한번도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잖아요. 가벼운 감기라도 그 과정에서 어떤 것을 겪었는지 세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한 친구가 제 책을 읽고 나서 어린시절 아팠던 경험을 들려줬어요. 자기 집에서는 체하면 고추장을 먹거나 뒤꿈치로 콩콩 뛰어다닌대요. 또, 어떤 친구는 갑자기 심장이 안 좋아서 숨을 몰아쉬었는데, 학교에서 한숨을 많이 쉰다고 오해를 받았다는 거예요. 그렇게 아주 구체적인 경험을 들을 때 흥미로워요. 다 다르지만 공통점을 발견할 때도 있고요. 

    개별적이고 고유한 아픔으로 들여다보고 싶은 거군요.

    네, 병원에서의 경험도 궁금해요. 뚜렷한 병명이 없으면 엄살로 여겨지기도 하고, 여성 환자들에게는 병약하고 수동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지기도 하잖아요. 그렇지 않은 환자들도 분명 있을 텐데 말이죠. 그런 다양한 모습들을 보고 싶어요.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머무르지만, 작가님의 생활은 다채로워요. ‘침대 위의 낭독회’ 아이디어가 정말 기발했어요. 침대 밖에 나갈 수 없을 때, 침대 위에서 모두가 잠옷을 입고 낭독하는 모습을 상상했다고요. 

    실제로 해보고 싶어요.(웃음) 그런데 ‘집콕 기간’이 길어지면서 현실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생겨나더라고요. 요즘 침대에서도 할 수 있는 온라인 모임들이 많잖아요. 실제로 아프고 나서 못 나갔던 책 모임이 온라인으로 재개됐고, 글쓰기 수업도 화상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현실에 제약이 생기니까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는 것 같아요.

    웹 사이트에 사진, 일러스트, 에세이 등 다양한 작업물이 올라와 있어요. 기본적으로 창작 욕구가 강한 사람이군요.

    너무 심심하니까,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도 찍어요. 순수하게 재미있어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글은 어떤 장면을 꼭 기억하고 싶을 때 쓴다면, 그림은 자유롭게 상상력을 펼치는 일에 가까워요. 언젠가 아주 큰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요. 

    살고 있는 도시의 풍경을 기록하기도 했죠. 산책하며 마주친 사물들을 사진으로 찍어 웹 사이트에 올리기도 하고요. 

    저희 동네는 대학교 근처라 밤에는 취객도 많고 정신이 없어요. 그래서 저를 자주 놀라게 했고, 처음에는 그게 반갑지 않았어요. 그런데 통증과 싸우다가 결국 관찰하는 태도를 취하게 된 것처럼, 제 동네에도 점차 유심한 눈길을 건네게 되더라고요. 언뜻 버려진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버려지지 않은 채 다양하게 사용되는 사물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길가에 널린 가정용 의자가 사람들이 쉬어 가는 평상 역할을 하기도 하고, 가게 앞 의자가 주차 금지 표식으로 활용되기도 하고요. 사람들의 다양한 생활방식이 담기면서, 더 이상 버려진 것이 아닌 새로운 사물이 되더라고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이 혼재된 모습을 발견하는 게 즐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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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하는 독자의 반응이 있나요?

    재미있다는 말이 가장 좋아요. 아픔에 대한 기록이니까 재밌다고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도 있었어요. 그럴 때 저는 ‘왜 안 되지?’하고 생각해요. 재밌다는 말이 제일 듣고 싶었거든요. 

    똑같이 이름 모를 통증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제가 감히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까요? 그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혹시 들려주고픈 이야기가 있다면, 제가 들어줄게요 하면서요.